“혹시요, 오빠가 단이 오빠예요?”
“벌써 말해 줬어? 뭐라고 소개했는데?”
“길드쟌님이 단이 오빠는 어엄청 강한 헌터라구 해써요. 구래서 오늘도 그루를 도와줄 거래써요.”
“진짜 그랬어? 주림 형이?”
그는 꽤 기분 좋게 반색했다.
단이 오빠도 길드장님한테 인정받는 게 기분이 좋은 걸까?
“네엥.”
그리고 길드장님이 이어 말하길, 그만큼 또라이니까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다. 괜한 일에 휘말린다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루는 입에 지퍼를 채웠다. 이 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루가 기뻐하는 기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단이 오빠는 유치하게 유치원생을 약 올렸지만, 그루는 어른스럽게 단이 오빠의 마음을 지켜 줄 것이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그루도 어른이군. 코를 쓱 닦은 그루는 위로하듯 기단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단이 웃으며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때였다.
띵!
[예비 양육자 감지. 애착 지수를 높이면 양육자 등록이 가능합니다.]
헤에, 그루가 입을 벌렸다.
‘S급이구나…….’
그루는 기단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상태창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루, 그렇게 궁하지 않아.’
양육자 슬롯에 아무나 주워 담지는 않을 것이다.
‘흥!’
선택지가 없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그루는 콧방귀를 뀐 후에 물었다.
“구런데요, 오빠. 아까는 모예요? 마술이에요?”
“아까? 아아-”
기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스킬 페널티. 뭔지 알아?”
“아라요! 박수를 세게 치면 손이 아푼 거!”
액티브 스킬이 강하면 강할수록 제약이 붙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식이었다.
“오, 바보 그루가 그런 것도 아네?”
기단이 놀리자 그루가 칫 고개를 돌렸다.
“삐쳤어?”
“아니요.”
“에이, 삐쳤네.”
그루는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걱정을 담아 우물거리듯 말했다.
“근데요, 단이 오빠. 그건 왜 쓴 고예요?”
그것도 길드장실 앞에서.
“아!”
기단이 눈을 휘며 예쁘게 웃었다.
“형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랭킹 1위 자리 뺏어 보려고 그랬지. 그런데 정상이잖아? 아쉽게.”
엣?
……장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장난으로 그렇게까지 할까? 그루는 아까 본 붉은 선혈을 떠올리다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치만 그 스킬은 안 쓰면 안 대요? 아풀 것 같운데…….”
“그건 안 돼.”
왜인지 기단은 가라앉은 듯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해져야 하니까.”
기묘한 분위기에 그루가 기단을 올려다보았다.
“자, 다 왔다.”
기단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문을 열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통화 중이던 주림이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 오늘 그루 때문에 쿠데타는 포기하기로 했어요. 형이 단이를 그렇게 사랑할 줄은 몰랐지 뭐예요.”
주림은 개소리에 질색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루는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다.
‘……!’
그루가 길드장님을 지켰나?
아까 그 뇌물 때문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뭔가 해냈다.
그루가 칭찬해 달라는 얼굴로 위풍당당하게 주림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전화를 끊은 주림이 그루를 받아 안았다.
그루는 내심 칭찬을 기대했지만 주림은 시큰둥하게 말할 뿐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가자.”
“……!”
*
각성자 관리국 여의도 지부, 각성자 등록 센터.
‘요즘은 조카 바보라더니.’
센터의 창구 직원인 이유정은 근래에 얼마나 많은 딸 바보, 아들 바보들이 각성자 센터를 찾아왔던가를 떠올렸다.
요즘은 그야말로 각성자들의 시대.
헌터로 활동하면서 큰돈을 쥘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스포츠 스타며 인기 방송인이 헌터들이 된 것은 물론이요, 유튜브 인기 동영상 10위 안에는 헌터들의 공략 영상이 줄을 이었다.
더군다나 던전 부산물이 가져온 다양한 산업 분야의 변화로 대학에서도 각성자를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대학들의 기조는 교육 트렌드의 변화를 일으켰고, 특출나게 교육열이 강한 대한민국 부모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각성하면 대학까지 프리패스!’
‘예비 각성자들을 위한 여름 특강 등록 시작!’
‘초등학생을 위한 한국대 각성자 전형 입시 설명회’
업체들은 이런 광고질로 돈을 벌겠지만, 유정은 공무원이었다. 받는 건 그대로고 고생만 죽어라 하는.
결국 유정은 돈은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자기 딸이며 아들이 미각성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많은 부모들을 상대해야만 했다는 뜻이다.
‘오늘도 역시인가…….’
이유정은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신나연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리 말단이라지만 그녀도 업계인이었다. 10위권 랭커인 신나연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실물이 더 예쁘다.’
그 신나연이 갑작스레 각성자 재등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게 아니라면…….
이유정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방싯 웃음을 보였다.
‘……귀여워.’
결혼 소식은 들은 적 없으니 딸은 아닐 테고, 해 봤자 조카 정도일 텐데.
‘랭커도 조카 앞에서는 장사 없구나.’
자신의 조카가 각성자가 아니라고 센터를 뒤집는 건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과장님을 불러야 하나.
조금 긴장한 이유정은 아이가 데스크에 내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상태창이 보이는지와 가지고 있는 스텟과 스킬에 대해 간단하게 작성하는 양식이었다.
한그루. 4살. 올 스텟 1. 스킬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따끔따끔!(F)’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킬도 귀엽잖아.’
이유정은 헤벌쭉 벌어지는 입꼬리를 가다듬었다.
사실 이런 종이 쪼가리로는 각성 여부를 믿을 수 없다.
상상력이 어찌나 풍부한지 종이 한 바닥에 대하 판타지 소설 설정을 써 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한그루 양, 이 스킬은 어떤 능력일까요? 음, 몸에서 가시가 나오나요?”
“아니요. 그루의 무기에 맞으면 따끔따끔 아파요.”
“아하, 너무 귀엽……. 아니, 여기에 스킬을 한 번 써 볼래요?”
이유정이 손등을 내밀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스킬이면 편하지.
하지만 그루는 이유정의 손등을 보고 망설였다.
“구럼 언니 아야 하는데…….”
하, 왜 신나연이 조카 바보가 됐는지 알겠다…….
“이래 봬도 엄청 튼튼해서 괜찮아요. 스킬을 확인해 봐야 하니까 여기에 살짝 써 줄래요?”
“네엥…….”
머뭇거리던 그루가 유일한 무기인 오리 집게를 아주 살짝 두드리듯 팔 위에 살포시 얹었다.
“앗!”
무언가에 찔리는 듯한 따끔함. 이유정이 화들짝 놀라자 그루가 쩔쩔매며 오리 집게를 품에 끌어안았다.
나연이 괜찮다며 그루를 다독였고, 이유정도 그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진짜 따끔하잖아. 이유정은 설핏 놀란 얼굴을 감춘 채 접수 양식을 들고 일어섰다.
“따라오시겠어요? 측정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가자, 그루야.”
“네엥.”
나연과 그루가 직원을 따라 움직이자 CCTV가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여기서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측정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 선 그루가 긴장한 기색으로 침을 삼켰다.
‘왔다!’
지금부터는 측정실로 들어가면 기계로 스텟과 스킬의 잠재력을 측정하게 될 터였다.
폰으로 무언가를 보내던 나연이 그런 그루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그루는 긴장할 필요 없어. 알아서 다 잘할 사람들이야.”
그루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
은신 상태의 기단은 헤드셋을 쓴 채 ‘던전 생태관’ 안을 걸었다.
관리국에서는 던전의 기본 교육을 전담한다. 각성자들이 헌터 라이선스를 받고는 막무가내로 던전으로 들어가 개복치처럼 죽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던전 공략 영상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쉽게 몬스터를 접할 수 있게 된 시대였으니, 생태관 도입 초기에는 그저 세금만 드는 돈지랄이 아니냐 회의적인 시선도 많긴 했었다.
그러나 관리국에서 초보 헌터 생존율이 크게 늘었다고 광고하는 걸 보면 탁상행정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태관에는 아쿠아리움에서나 볼 법한 원형의 어항 안에 특수 용액을 쏟아 넣어 몬스터를 산 채로 박제해 둔다.
특수 용액은 마물을 동면 상태로 만드는데, 자칫 관리 부실로 인해 어항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몬스터는 눈을 뜨고 센터를 휘젓고 다닐 터였다.
평일 오전이라서인지 다행히 생태관 이용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치부 신의 축복인가. 기단이 기분 좋게 허밍을 흥얼거리며 진열된 어항 사이를 가로질렀다.
‘관리국 헌터들을 전부 소집하려면…….’
몬스터들을 대충 훑으며 지나던 기단이 한 곳에 멈춰 섰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겠지.’